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 왕국 (문단 편집) === 카페 왕조 === 일반적으로는 편의상 [[위그 카페]]가 왕위에 선출된 [[987년]] 시기부터 프랑스 왕국의 시작으로 카운트하지만, 이는 편의상의 구분일 뿐 [[서프랑크 왕국]]과 동일한 정치체였으며 [[존엄왕]] [[필리프 2세]] 재위에 비로소 국명을 [[프랑크]]의 발음이 변화된 [[프랑스]]으로 칭해지게 된다. [[카롤루스 왕조]]의 마지막 군주인 [[루이 5세]]가 자식 없이 사망한 후, 결국 세를 키우던 위그 카페가 [[귀족]]들의 추대를 통해 왕위에 올랐다. 그러나 대귀족들 사이에서 선출된 [[군주]]였고 카페 가문의 [[정통성]]은 처음에는 매우 미약했다. 기존의 지배자인 [[카롤루스 왕조]]와는 모계로 친척 관계였으나 부계로는 혈통이 닿지 않았고, [[프랑크 왕국]] 시절부터 파리 [[백작]]을 역임하긴 하였으나 당시의 내로라는 명문가들에 비하면 역사가 짧았다. 그렇기에 초창기의 카페 왕조는 자칫 실수 한번 하면 그대로 패망하는 위험한 상태였다. 게다가 그 당시 남부와 서부 동부에는 카페 왕조보다 몇 배, 몇십 배는 더 [[크고 아름다운]] 영지를 지닌 영주들이 있었고 카페 왕조는 이들의 명목상 군주일 뿐이지 제대로 된 [[실권]]은 없다시피하였다. 하지만 [[적장자]]들을 낳으며 점점 [[왕조]]의 정통성을 쌓아가고 결혼 상속, 때로는 과감한 영지 몰수 등을 강행하여 점진적으로 [[왕권]] 강화를 꾀하였으나 [[1066년]], 휘하 봉신인 [[노르망디 공국|노르망디 공작]] 기욤 2세가 [[잉글랜드 왕국]]으로 쳐들어가더니 잉글랜드왕인 [[윌리엄 1세]]로 즉위하고 [[노르망디 공국]]과 프랑스 서북부 일부를 통째로 가지고 날라버린다.[* 다만 이는 노르망디 공작이 잉글랜드 군주를 겸하게 된 것이며, [[노르망디 공국]]이 [[잉글랜드 왕국]]에 편입된 것은 아니다. [[봉건제]], [[동군연합]] 문서 참조.] 명목상으로는 윌리엄도 프랑스 군주의 신하였으나 프랑스의 군주로서도 윌리엄과 [[노르만 왕조|그의]] [[플랜태저넷 왕조|후손들을]] 쉽게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. 그러나 [[필리프 2세]], [[루이 9세]]와 같은 [[명군]]들을 배출하여 지속적으로 대영주들과 [[잉글랜드 왕국|잉글랜드]] 군주의 영향력과 [[권력]]을 조금씩 빼앗아 군주의 힘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. 거기다가 대영주들이 [[십자군 전쟁]]에 투자했다가 파산하여 몰락하는 등 프랑스 군주로서는 최고의 행운이 따라준다. 그렇게 야금야금 잉글랜드 군주와 대영주들을 견제하던 와중 [[샤를 4세]]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여 단절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